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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 전과 후의 나
제목 워킹홀리데이 전과 후의 나 등록일 2022-08-29 10:33 조회 1499
작성자 인포센터



안녕하세요. 워홀프렌즈 11기 김다은입니다.

어느덧 마지막 포스팅을 하는 날이 왔네요.


그동안 다양한 주제로 포스팅을 하면서 나름대로 제 워홀 생활을 복기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복기의 결과를 모아모아 오늘 포스팅에 정리해보겠습니다. 







워홀을 결심한 이유


워홀을 결심한 이유는 꽤 단순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기까지 1년의 공백이 생겼다.

다시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만 풀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까지 내가 그리던 해외생활을 하러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했다. 


→ 수능이 아닌, 내신 성적을 한 번 더 사용해서 입시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시가 아닌 수시로 입시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의 나



학원에서 공부하던 나



워킹홀리데이 이전의 나는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나에 대한 작은 믿음도 없이 학교(입시제도)라는 커다란 것의 작은 부품처럼 움직였다.

물론 그 안에 친구들과 보낸 시간, 혼자 보낸 시간들이 있겠지만 멀리서 본 워홀 이전의 내 인생은 그러했다.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닥쳐오는 수행평가와 시험들을 준비해야 했고,

뒤숭숭한 마음을 달랠 시간은 당연히 부족했다.

자신이 무얼 하면 되는지, 무얼 하면 좋은지 아는 확신있고, 강단있어 보이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이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물렁물렁한 상태로는 대학도, 그 외의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부담없이 논 것도, 목표를 갖고 공부한 것도, 다른 길을 찾아본 것도 아닌

우유부단하게 고3을 보내고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희안하게, 결과를 알게 되자 홀가분했다.

물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한 번 더 사용해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일종의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덕에 나는 졸업 이후부터 다시 대학 원서를 접수하는 때가 올 때까지 약 8개월 동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건 처음 느껴보는 자유일 것이었다.

학생의 신분도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내 의지로만 보내는 생활은 말그대로 난생처음이었다.



워킹홀리데이 이후,



내가 사랑하는 트램 !


나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장소에 따라 긴장도 하지만 설렘을 가득히 느끼는 사람이었다.

부끄러움은 많고 낯도 가리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고 서툰 영어로 소통하는 일도 즐거웠다.

내가 먹을 음식의 메뉴를 직접 선정해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와 뒷정리까지 하는

그 과정을 즐겼으며 가끔은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역시 즐겼다.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베트남 친구 한 명과 룸메이트가 됐을 때 그래도 나름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어를 읽지 못해서 내 일기를 훔쳐볼 여유가 없다는 걸 알아서일 수도 있겠고

(어느정도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기 때문에), 혹은 나처럼 조용했던 친구여서 그런걸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됐든, 나도 누군가의 룸메이트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목적지가 있기보다 그냥 멍하니 거리를 거닐고 그 거리를 구경하고

구멍가게에 들어가 물건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공원의 맛을 너무 알아버렸다.

내가 장소에 정을 잘 붙이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탈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트램이나 기차, 버스 등을 타고 차창 밖을 구경하는 것을 극도로 좋아했다.


마냥 자린고비인 줄 알았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념품을 바리바리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학생 때, 자신의 진로를 일찍부터 정한 친구들의 거창한 면을 부러워한 것도 있었지만

사소하게 본인의 취향을 잘 아는 친구들도 부러웠는데 호주에서 나도 조금씩 나의 취향을 알아갔다.





갔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애 첫, 자유로웠던 1년이었다.

그 시간이 똑같은 한국에서의 환경이 아니라 호주라서,

워킹홀리데이라는 큰 시간의 틀 덕에 더 자유롭게 지냈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마 워홀을 가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그냥저냥 평범하게 흘려보냈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다.

워홀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흔들렸고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상황에 몸을 맡겼었고 저항없이 움직였다.

다양한 외국인들과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대화하며 인생을 바꿀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고

이전부터  갖고 있던 다양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고 중간중간 시간과 마음을 쏟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기는 내게 좋은 시기로 기억된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의 행복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낸 것도 아니었고 늘 설레는 매일을 맞이한 것도 아니었지만

벅차오를만큼 좋았던 순간들은 분명히 있고, 그 기억이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이미 코로나 이후의 약 2년은 그 기억들로 버텨냈으니까 내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갔다오고 나서 깨달은 것




그곳의 하루나 이곳의 하루나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이 마음은 변함없이 간직해야 한다는 것. 


호주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소중해서 거의 매일 일기를 쓰며 지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까 일기를 잘 쓰지 않는 내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그곳(해외나 당신이 원하는 어딘가)에서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어떤 조건만 바뀌면 내 삶은 크게 달라질 거야, 라고 쉽게 넘겨짚지 말고

어디에 있든 매일을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전까지는 진짜 삶과 가짜 삶을 구분해서 이건 진짜 내 삶이 아니야, 라고 여겼었는데 그런 건 없다.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며 독이 된다.

어디에 있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걸 갔다오고 나니 깨달았다.




-


  이번 포스팅을 위해서 제가 호주에서 썼던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보았습니다.


매일같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생활에 괴로워하다가도 또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 하나하나의 인상과 감흥에 대해

자세히 적어놓은 제 모습이 그려지면서 그 순간들이 생생히 떠오르더군요.


그 안에서 저는 제가 버리고 싶은 모습들을 버리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괴로워하면서도

어떤 순간들, 작다고 여겨지는 순간들 하나하나에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겪거나, 사고방식과 인생의 목표가 바뀌는 등의 이야기는 제게 없습니다.


워홀을 가기 전과 워홀을 갔다오고 나서의 저는 경험치는 조금 올라갔을지 몰라도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비슷한 모습과 태도로 비슷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만, 호주라는, 호주 케언즈와 멜버른이라는 장소에 대한 추억과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습니다.

그 기억들로 저는 몇 년을 버텼고, 앞으로 몇 년을 또 추억을 파먹으며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그런 추억을 남겨준 호주가 웃기게도 제 2의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이것들이 제 워킹홀리데이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출처] 워킹홀리데이 전과 후의 나 (워킹홀리데이 카페) | 작성자 11기 김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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