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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 11. 삼일절과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
제목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 11. 삼일절과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 등록일 2017-02-02 17:16 조회 4820
작성자 인포센터

원문 : http://cafe.naver.com/woholfriends/7988





2016년 3월 1일은 제 97주년 삼일절입니다.


'#Remember1919' 나 '#삼일절' 등의

해시태그를 쓰면서 삼일절을 기리고




이를 위해 SNS에서는 한 트위터 유저가 디자인한

삼일절 맞이 특별 이모티콘을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등


다양하게 삼일절을 기억하고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갖고 있는데요.




휴일도, 새 학기도 아닌 유럽의 3월이지만

제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국의 삼일절을 느껴봤습니다.




사실 네덜란드보다 헤이그라는 지명이

우리들, 특히 학생들에게 더욱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로 1907년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로

한국사 교과과정에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헤이그는 바로 네덜란드의 정부가 있는 도시로,

네덜란드에서는 덴 하그(Den Haag)라고 불립니다.

헤이그(the Hague)는 영어식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게 불리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고종은 이의 불법성을 알리고

주권을 회복하기를 희망하며


바로 이 곳 헤이그에서 열렸던

제 2회 만국평화회의로

세 명의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 검사 이준, 그리고

전 주러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입니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바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해있습니다. 세 헤이그 특사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헤이그에 파견되어 머물렀던

융 호텔(Hotel Jong)을 기념관 형태로 개조한 것입니다.




이준 아카데미 원장 이기항 선생님이

네덜란드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의 후원과 함께

이준열사기념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면 문을 열어주시는데,

이기항 원장님이 직접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준 열사 기념관 위치

Wagenstraat 124, Den Haag



개장 시간

평일 10:30 - 17:30
토요일 11:00 - 16:00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네덜란드 길 한복판에서 태극기와 한글을

발견한 반가움도 잠시, 계단을 오르니

먹먹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세 특사의 생애와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후

107년 전 이곳에서의 발자취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설은 평화회의가 개최되기 1년 전인

1906년 4월에 한국을 떠나 북간도에서 머물고 있었고,




1907년 4월에 서울을 떠난 이준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습니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상페테스부르크를 거쳐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의 이준 열사는

수 차례의 투옥에도 불구하고 구국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온 분입니다.




두 달에 걸쳐 서울에서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분노한 채 1907년 7월 14일 오후 7시

지금의 이 자리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각고의 노력에도 끝내 들어가지 못한,

제 2차 만국평화회의장으로 사용되었던

비넨호프 드 리더잘(Binnenhof De Ridderzaal)이

평화롭게 헤이그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미공사로 근무한 이범진의 아들인 이위종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서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 러시아어 및 프랑스어에

능통한 인재였습니다.




그 역시 구국운동을 모색하던 중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이상설, 이준과 1907년 6월

러시아 상페테스부르크에서

합류해 헤이그로 향했습니다.




유창한 외국어로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실정을 알리는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외쳤고,

즉석으로 한국을 동정하는 결의안까지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위종은 이준 열사의 장례를 치른 후

미국과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했고,

그의 사망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 분들의

노력을 기리며 김구 주석을 비롯해

많은 전 대통령들과 해외 인사들의

휘호가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 분들의

노력을 기리며 김구 주석을 비롯해

많은 전 대통령들과 해외 인사들의

휘호가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나라가 기울어가는 모습에 분노하는 세 젊은

청년들이 허무하게 순국하고, 허탈하게 돌아갔을

모습이 그려져 슬픈 감정이 더욱 컸던 시간이었습니다.



#Remember1stMarch1919 #YiJunPeace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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