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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체험수기|[일본]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나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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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나의 1년
제목 [일본]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나의 1년 등록일 2011-06-14 01:01 조회 12143
작성자 한소영

 

1년간의 일본에서의 생활. 그 기억들은 지금의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의 초상화처럼, 힘들었던 기억들도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싱그럽고 활기찼던 나의 시간. 그 기억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충전하고 있다.


20대, 주저하기엔 너무 젊다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본격적인 취업활동으로 정신이 없었던 4학년 2학기. 요즘세상에 그 흔하다는 어학연수도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순수 국내파인 나는, 그
래도 구직활동이 그렇게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한 학기 내내 수많은
이력서를 냈고, 수많은 실패를 맛보았다. 당당했던 나는 점점 자신감이 없어
졌고, 내 스펙에 대한 뒤늦은 후회만이 가득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는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으니, 졸업을 미루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다 오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의 결단력이 놀라웠고 부럽기까지 했다. 지금 이 시기. 여자라면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2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그것도 대학 졸업반에 워킹홀리데이라니.

과연 지금의 내가 그런 결정을 내려도 괜찮을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친구는 어차피 고민할 거면 될지 안 될지 모르니 함께 신청해보자고 했다. 나는 접수 마감을 하
루 남긴 전날 밤, 부리나케 자기소개서와 활동계획서를 비롯한 서류들을 마련했고, 마감시간 2시간여를 남겨두고 겨우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의 기회였는지 단번에 합격의 기쁨을 맞볼 수 있었다. 합격통지를 받고 영사관에서 처음으로 비자를 받았을 때의 설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열정이 샘솟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지만 분명했던것은 정말로 후회 없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1년을 보내고 오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 다짐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1년을 보내고 돌아온 지금, 나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일단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20대는 부딪히고 깨지며 다시 일어나야 하는 성장의 시기이다. 어떤 도전도 무모하다거나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 그러니 지체하지 말고 바로 지금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 확고한 목적의식만은 가지고 떠나기
요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외국을 나가는 것을 일종의 ‘도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도 물론 취업이 안 되던 시점에서 갑작스런 선택을 했다는 점은 그러한 ‘도피’ 그룹에 속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심 많은 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떠났다. 정말 치밀하게 계획된 하루하루 속에서 후회 없는 1년을 완성하고 싶다는 목적 아래 매일매일을 그야말로 알차게 보내고 왔다. 그렇기에 더욱 아련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도피’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휴식이라는 의미로는 하나의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또 다른 인생의 길이 보이고 목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도피’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양과 성격이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도피는 그냥 허송세월 시간낭비밖에 되지 않는다. 영어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서 토익 점수가 800점도 안 나오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봤다. 간단한 생활영어밖에 할 줄 몰라서 한국에 돌아와 다시 영어학원을 다니며 구직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주저 없이 쓴 소리를 하고 싶다. 1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온 것이냐고. 단순한 청춘의 추억으로만 삼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자신이 원하는 성공적인 워홀 기간을 보낼 수 있다. 이왕 다녀오는 거 한국에 돌아왔을 때 후회 없이 성공적인 기간을 보내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부족하다면 많은 것들을 치밀하게 다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적의식만은 반드시 가지고 워홀을 준비하길 바란다. 워홀 비자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단순한 도피가 아닌 확고한 목표의식 속에서 인생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준비한 만큼 얻을 수 있다
내가 출국했던 작년은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았던 불행한 시기였다. 애초 워홀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왔던 돈을 탈탈 털어 환전을 하고 나니 일본에서의 당장의 생활비가 막막할 정도로 돈이 부족했다. 원래 친구와 둘이 원룸에서 살려고 했었는데, 집값으로 돈을 다 쓰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다행히 같은 학과의 선배언니도 워홀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셋이서 함께 원룸에서살기로 결정했다. 많은 이들이 워홀 준비를 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점이 바로 ‘집’을 구하는 일일 것이다. 나 또한 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대안을 비교하며 고민했다. 결국 ‘레오팔레스21’이라고 하는 원룸을 택했는데, 가격이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광열비와 관리비 등 모든 기타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한국에도 사무실이 있어 믿고 계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을 택했다. 친구들과 함께 살 목적으로 3개월 계약을 하고, 3개월 뒤에는 직접 일본에 가서 방을 알아보고 이사를 할 작정이었다. ‘레오팔레스21’은 비용이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러나 큰 기업인 만큼 믿고 계약할 수 있다. 직접 한국사무실에서 상담을 하며 원하는 지역, 원하는 가격대로 집을 고를 수 있다. 나는 신주쿠에서 가까운 지역을 원했기 때문에 ‘오기쿠보’ 근처의 집을 택했다.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동네인 ‘키치조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시내로의 접근성도 좋고, 조용하고 예쁜 마을로 주택가 환경도 매우 좋은 곳이다. 건물의 건축시기에 따라 시설의 편의성은 조금 달라질 수 있는데, 내가 선택했던 집은 당시 지어진 지 2년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매우 쾌적했고 바로 옆에 편의점도 위치해 있어서 무척 편리했다. 한국에서 알아볼 수 있는 일본의 룸 쉐어, 기숙사들도 시설에 비해서는 꽤나 비싼 편이다. 일본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다음 카페인 ‘동유모(동경유학생모임)’에서도 다양한 입주광고를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의 장점은 대부분의 집들이 신주쿠나 닛포리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편리하고, 한국인들이 관리하고 있어 계약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단점은 집을 직접 확인 할 수 없어 정작 방문해보면 사진과는 다른 낡은 시설일 수도 있고, 기숙사나 룸쉐어의 경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집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개인공간이 별로 없어 불편하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집을 계약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월세를 비롯해 시키킹(보증금), 레이킹(사례금), 소개비에 일본인 보증인까지 필요하다. 하지만 찾아보면 일본인들이 룸 쉐어를 하며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차피 룸 쉐어나 기숙사를 통해 비용을 아낄 생각이라면 현지에서 집을 알아보는 편이 저렴할 때도 많다. 찾아보면 다양한 방안들이 있으니 자신의 상황에 맞는 대안을 비교해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나는 워홀 준비 대행기관을 이용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알아보고 준비했다. 정보수집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혼자서 준비하다 보니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화 하는 데에 확실한 도움이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는 말 그대로 내 몸 하나 달랑 갖고 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아무런 소속도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크기 마련이다. ‘뭐 부
딪쳐보는 거지’라고 대범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기는 하나,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보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워홀 기간 동
안 얼마만큼 얻어올 수 있는지는, 의심할 것도 없이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도 같았던 세 여자 이야기
원룸에서 친구 셋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갈등 속에서 서로를 성격을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가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
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3개월 뒤,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춰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동유모’카페를 통해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룸 쉐어를 구할 수 있었다. 월세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역에서 1분 거리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주택가라서 주변에 마트도 많았고 큰 공원도 있었다. 단지들이 즐비해 있는, 일본인들이 북적거리는 주택가 분위기가 새롭고 재밌었다. 이사한 집에서는 나를 포함해 3명의 여자가 동거동락하게 되었다. 옆방에는 와세다 대학원을 다니는 한국인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일본에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작은 방에는 뮤지컬 전문학교를 다니는 싹싹하고 밝은 일본인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언니의 안내를 받으며 와세다 대학교를 견학하기도 하고, 종종 집 근처 공원에서 함께 운동을 하기도 했다. 김치를 비롯해 매운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
하는 일본인 동생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졸업 공연에 초대
받아 멋진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자유와 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일본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아쉬웠다. 언니와 동생과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은 아직도 일본에서의 가장 큰 보석으로 남아 있다. 녹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잠옷 바람으로 온 동네를 돌아다녔던 일도,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나눴던 많은 대화들도, 삼겹살과 김치에 와인을 곁들이며 밤을 새웠던 날들도, 하코네로 온천여행을 가서 밤하늘의 별을 맞으며 함께 노천온천을 했던 일도, 어느 것 하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속 깊이 아로새겨 있다.

아르바이트, 전략적으로 공략하기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에 도착해서 어느 정도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슬슬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아르바이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지하철역에 비치되어 있는 구인 잡지(헬로워크, an) 등을 살펴보기도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다음카페 ‘동유모’에서도 한국인들이 올리는 구인광고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국가게에서 일해도 상관없다면 이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또한 일본은 가게 앞에 직접 구인광고를 붙여놓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할점은 구인광고를 보고 바로 가게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단 전화를 걸어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했다고 한 뒤, 외국인도 일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담당자가 간단한 인적사항을 묻고 면접 날짜를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이력서를 준비하고 단정한 복장으로 약속된 시간에 면접을 보면 된다. 이력서는 편의점이나 100엔숍에서 주로 판매하는데, 편의점보다는 100엔숍에서 구매하는 편이 저렴하다. 일반 취업용 이력서와 아르바이트 이력서 두 가지 종류를 파는데, 어떤 것을 사용하든 상관없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이력서를 자필로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정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글씨를 틀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천천히 써내려간다. 급하게 면접이 잡힐 수도 있으므로 이력서 몇 장을 미리 써서 준비해두는 편이 좋다. 경험상으로는 이력서를 쓰는 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집중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면접에서 떨어지는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운이 좋게도 처음 면접에서 결정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작은 라면집이었는데 한국인 종업원들이 성실하게 일을 잘해주기 때문에 전부터 한국인들을 자주 고용한다고 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가게여서 일이 고되었지만, 점장님도 좋은 분이셨고 처음으로 시작하는 일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어서 3개월 동안 즐겁게 일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 다른 일을 구할 때에는 많은 면접에서 떨어지며 쓴맛을 맛보아야 했다. 이사하면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일본에 오기 전, 내가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는 일본 기업에서 근무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어일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일본 기업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근무가 만족스럽다면 실제로 취업을 해서 2~3년 경력을 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일반 매장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한 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 보통일 정도로 외국인을 위한 일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입사 지원을 했고, 수많은 실패를 맛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목표를 꼭 이루고 싶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좋은 기회를 얻어 인재파견기업에서 업무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목표했던 대로 일본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며 비즈니스 일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24시간 마트 같은 곳에서 야간 파트로 일하는 것이 쏠쏠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세워 지원했으면 한다. 경험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어떠한 업종에서 일해보고싶은지 생각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면, 배울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을 것이다. 막상 자꾸 면접에서 실패를 맛보게 되면 현실에 주눅 들기 쉽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 나간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틀을 깨고 뛰어들어 일본인들과 어울리기
처음에 일본에 가서 6개월 정도가 될 때까지 난 한국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도쿄의 코리안 타운인 ‘신오쿠보’ 지역에 가는 것조차 싫었다. 일본에까지 와서 한국인들과 어울리기에는 이곳에 온 의미가 무색해질 것 같았다. 좀 과한 반응이기도 했지만, 길거리에서 한국어가 들릴 때면 의식적으로 내가 한국인인 것을 티 안내려고 노력할 정도이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작은 BAR를 찾았다. 동네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BAR라서 단골손님들이 많은 곳이었고 조용하고 단란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곳에서 배용준을 좋아하시던 사장님의 사모님과도 친해지고, 바텐더와도, 단골손님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친구가 되었다.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자 함께 하나미를 가자고 초대받아 모두 함께 즐거운 피크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번은 일본인 친구로부터 문화센터 등을 알아보면 한일문화교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매달 첫째 주 일요일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서로에게 언어를 가르쳐주고, 친목을 도모하는 문화교류 모임이 있었다. 당장 그곳을 찾아가 매달 모임에 참석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일본인들과 어울리고 친해져 좋은 친구가 될수 있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도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총 6가지에 이른다. 라면집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콘서트 회장에서 안내를 하기도 했고, 이벤트회장 매점에서 판매를 하기도 했다. 좋은 기회를 얻어 통역 일을 하기도 했고, 일본 기업에서 사무직을 하기도 했고, 다른 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다양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아가며 일을 바꿔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워킹홀리데이는 학교나 어학원이라는 소속이 없기 때문에 일본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작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인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인연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보고 먼저 다가간다면, 언제라도 좋은 인연과 함께 즐거운 일본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 쏟아지는 별을 맞는 황홀한 기분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일본의 많은 곳들을 여행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혼자만의 여행도 두 번 있었다. 처음으로
홀로 떠난 곳은 일본인 지인의 추천을 받아 다녀온 ‘오시노핫카이’라는 마을
이었다. ‘오시노핫카이’는 후지산 근처에 위치한 마을로, 후지산에 내린 눈이
지하 용암사이로 흘러들어 약 8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여과된 순수한 샘물을 만나볼 수 있는 조용하고 작은 시골마을이다. 추운 겨울, 신주쿠에서 미리 예약한 버스를 타고 도쿄에선 찾아보기 힘든 함박눈이 내리던 그곳을 찾았다. 버스정류장에 내린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지만,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내리던 눈이 그치자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샘물이 장관을 이루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 마음을 위안 받으며 첫 혼자만의 여행을 만끽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간사이 지역으로 두 번째 홀로여행을 떠났다. 작은 배낭 하나만을 짊어진 채 도쿄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오사카로 향했다. 이후 3일 동안 나라, 고베, 교토, 오사카 지역을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언제 추웠냐는 듯 갑작스럽게 따뜻해진 청명한 날씨와, 여행하는 동안 마주쳤던 수많은 인연들. 이렇게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싶을 만큼 기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홀로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여행은 나의 일본생활을 더욱 풍요롭고 멋진 선물로 포장해주었다.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 되어 지금의 나를 성장시켜주고있다.

당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보고, 듣고, 느끼게 하라
워킹홀리데이는 스스로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다른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생
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할 수 있는 1년을 보냈으면 한다. 워홀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막막함도 많고 실제로 외국에서 살아가면서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시행착오 없는 성공은 없다.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인 1년을 보내고
온 사람만이 자신이 원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내가 당당하게 일본에서의
기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1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풍요롭게 채워질 1년을 그려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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