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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른 살 워홀러의 독일 생활
제목 [독일]서른 살 워홀러의 독일 생활 등록일 2011-06-14 01:39 조회 20512
작성자 정수진

 

모델 워홀러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고백한다. ‘피 끓는 20대에 넓은 세상을 경
험하리라’ 다짐하는 대다수 20대 워홀러들과 달리 나는 직장생활 5년을 보내
고 ‘이제 좀 휴식을 취해보자’는 생각이 간절했던 서른 살이고,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해 외국으로 떠나는 그들과 달리 퇴직금을 탈탈 털어간 입장이니
까.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란 20대, 특히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워킹홀리데이는 만
서른 살 이전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내가 워킹홀리데이에 관심을 가지게된 건 합법적으로 타국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처럼 직장생활을 몇 년 하고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외국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비자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려는 거라면 학생비자를 취득하면 되고, 취업을 하려는거면 취업비자를 얻을 일이다. 하지만 그냥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내 삶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떤 비자를 받으란 말인가? 물론 영국은 관광비자로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지만 구제불능성 게으름뱅이인 나로서는 6개월만 쉬라는 건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딱 물 한 모금만 마시라는 것과 같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1년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왜 하필 독일인가
지금 워킹홀리데이를 실시하는 나라는 호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등 모두 일곱 국가이다. 아일랜드는 2010년부터 시행된지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여섯 개 국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 바로 호주다. 나 역시 영어권인 호주와 캐나다를 고민했었고, 부모님 역시 호주와 캐나다를 적극 권장하셨다. 그런데도 결국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한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경제적 이유.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가라는 신의 계시인지 어쩐지,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하여 몇 년간 독일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됐다고 전해온 것. 알량한 퇴직금 포함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끌어 모아 떠나는 마당인지라 친구 집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다른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여행을 하기에 독일이라는 나라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라는 점.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체코 등에 둘러싸인 독일은 유럽을 찬찬히 돌아보기에 매우 적합한 위치다. 기왕이면 1년간 차근차근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영어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결정은 독일 워킹홀리데이 6개월 차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에도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마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를 갔다면, 물론 그 나름대로 즐거웠을 테지만 경제적 이유에서라도 더 넓은 나라를 경험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워킹홀리데이 준비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내가 호기롭게 직장에 사표를 던진 것이 2009년 12월 말. 독일로 출국하기로 결정한 날은 2010년 5월 13일이었다. 아무리 독일어 공부를 위한 어학연수는 아니라지만 1년간 베이스캠프로 삼을 나라의 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게 꺼림칙해 몇 개월간 기초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하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구제불능 게으름뱅이다. 더군다나 5년간 1주일에 꼬박 이틀씩은 밤을 지새우는 잡지사 생활을 보낸지라 머리는 준비해야지, 어서 빨리 준비해야지 하면서도 몸은 방구석에서 나오길 거부했다. 피 같은 돈으로 등록한 학원만 1주일에 이틀씩 겨우겨우 나갔을 뿐. 덕분에 4개월간 독일어 학원을 다니긴 다녔으되 떠듬떠듬 독일어를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뜻을 모르고 발음만 읽을줄 아는 지식이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지금도 생각하지만 아무리 독일에서 독일어를 공부하지 않을 거라 해도 최소한의 대화가 통하는 정도만큼은 공부하고 오길 권하고 싶다. 유럽에서 가장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 중 하나이긴 하지만 떠듬거리더라도 본토박이들과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많은 친구를 사귀는 길이니까. 독일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은 게 4월 7일. 독일 워킹홀리데이 상담 설명을 해주는 유학원에서 설명을 듣고 꼭 필요한 보험에 가입한 게 4월 26일. 보험 증명서와 은행 잔고 증명서, 여권과 사진을 들고 쫄래쫄래 비자를 신청하러 간 게 4월 30일이었다. 선배 독일 워홀러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자 취득에 걸리는 기간이 매우 짧으며 서류만 완벽하다면 거절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는 했지만, 5월 13일 출국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은 사람치고는 참 한도 끝도 없이 여유롭게 준비한 게 아닌가 싶다. 무사히 5월 4일에 비자를 취득하고는 드디어 출국 하루 전, 전자사전 구입과 환전, 짐 꾸리기 등 자잘한 준비를 마쳤다. 1년간 떠날 거라면 짐도 산더미처럼 많을 거라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짐은 최대한 적게 꾸리는 게 센스. 겨울옷은 전부 나중에 집에서 부쳐주기로 했고, 옷은 평소 입는 대로 간소하게 입으리라 다짐하면서. 간혹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란 질문을 받는데,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두 가지만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기대는 갖되 환상은 버리라는 것, 그리고 조금은 대책 없을 만큼 긍정적인 마인드를 탑재하고 오라는 것. 그 두 가지가 그 어떤 효율적인 물건이나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국 생활, 만만하지 않네
2010년 5월 13일, 드디어 인천공항을 통해 독일로 떠났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만 하루 만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그런데 가벼운 배낭 차림의 유럽인들 사이에 동양인 여자가 큰 트렁크를 짊어지고 들어서서인가. 입국심사관은 쉽사리 통과했는데 세관에서 걸린다. 무조건 짐을 풀어보라는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심지어 봉지라면 성분까지 세세히 훑어보고, 수분크림뚜껑까지 열어보라는데 슬슬 화가 치민다. 그러나 어쩌랴. 독일과 한국의 워킹홀리데이는 이제 시작 단계이고, 그들이 내가 의심스러우면 그럴 수 있는 것을. 사실 독일에서 살면서 크고 작게 ‘아, 이게 설마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을할 때가 있었는데, 공항 세관 검사에서 나는 그걸 처음 느꼈다. 공항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같은 비행기에 있던 수많은 서양인들이 우수수 그냥 나가는 데 반해 나는 수분크림 뚜껑까지 하나하나 열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독일이랑 프랑스가 유럽 중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는, 믿을 수는 없으나 그냥 지나치기 힘든 루머도 많이 접했으니까. 6개월 차에 들어선 지금은 어떠냐고? 무언의 인종차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아마 독일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에서 극소수의 동양인에게 그들과 같은 시선을 보낼 수는 없다고 본다. 바꿔 말하면 그건 아마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때로는 그 시선이 우호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멸시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극도의 무관심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인종차별 문제를 염려하는데, 그 걱정을 먼저 하기 전에 언어 실력을 좀더 쌓고, 무슨 일이든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게 좋을 듯싶다. 아무리 좋은 나라라도 내가 살던 내 나라만큼 편하고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타국 생활이 팍팍하고 만만치 않은 건 당연하다. 그걸 섣불리 ‘아, 혹시 내가 여자라서? 게다가 동양인 여자라서?’라는 의구심으로 변질시키지는 말자. 그리고 또 하나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 매우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좋은데, “곤니치와? 니하오?”라고 접근하는 경우. 이건 100명 중 97명 정도에 해당한다. ‘설마, 아직도 대한민국을 잘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고 오면 오산이다. 아직도, 동양인을 볼 때는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를 먼저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심한 애국자가 되곤 한다. ‘빨리 우리나라가 더 알려져서 동양인을 볼 때면 먼저 한국인이냐고묻게 되기를!’ 하고 기원하게 된다.

1년의 시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누구나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짜둔 계획이 있을 것이다. 어학 실력을 높이고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리라, 평생 해보지 않을 독특한 아르바이트를 해보리라, 이 나라의 특색인 무엇 무엇만큼은 경험하고 가리라 등. 나의 경우 기본 바탕은 ‘전적으로 이 1년을 평생 다시 없을 안식년으로 쓰리라’였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은 것 몇 가지는 있었다. 우선은 원래 꿈이었던 ‘내 글’을 차분히 써보는 것, 그리고 죽기 전 내가 꼭 참여하고 싶던 축제 두 곳에 가보는 것.보통 워홀러들이 열심히 돈도 벌면서 어학을 공부하는 것에 반하면 무척 사소하고 소박한 계획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 계획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꿈’이기에 소중하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기사를 썼지만, 그것이 내 글은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쓰고 싶은 내 글을 쓰리라는 꿈은, 하루하루 사는 데 급급하고, 퍽퍽한 현실에 치여 이룰 수 없었다. 물론 핑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축제 역시 마찬가지. 원래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한창 분위기에 들떠 살짝 미쳐(?) 돌아가는 걸 좋아한다. 축제란 평상시와 다르게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언제나 ‘아, 무슨 축제 하네. 가고 싶은데’ 하곤 끝이었다. 물론 짬을 내면 갈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 가려면 갈 수 있지만 기어이 시간 내고, 친구들과 약속 잡고, 준비하고 하는 과정이 귀찮구나 하는 심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 외국에선 충분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축제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크고 작은 축제가 즐비한 유럽 아닌가. 나의 사소하고도 소박한 계획은 지금 반쯤 진행 중이다. 더디고 더디지만 확실히 한국에서 일에 치여 살 때보다는 ‘내 글’에 대한 윤곽을 잡아가는중이다. 그리고 죽기 전 내가 꼭 가고싶은 축제인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베네치아 가면 카니발 중 옥토버페스트에 다녀왔다. 그리고 현재 베네치아 가면 카니발 여행 일정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어디선가 재미있는 축제를 한다 싶으면 나는 어김없이 달려간다. 인생은 한 번이고, 한국에서 그랬던것처럼 ‘아, 가고 싶다’ 하고 손 놓고 있으면 꼭 후회하게 되리란 걸 이젠 충분히 아니까.

돈과 어학, 완전히 포기해?
말했다시피 나는 퇴직금을 탈탈 털어 이곳 독일에 왔다. 여느 20대 청년들
처럼 단돈 몇십만 원 들고 와 당장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무모함을 벌일 나이는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독일은, 회화를 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힘들다. 우리나라에서 독일어를 기본 회화 이상으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영어나 일어에 비하면 한참 적을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기초 문법과 회화를 듣고 갔을 뿐, 완연한 까막눈에 불과하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호주나 캐나다에 비해 독일이 특히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 대부분 호주에서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반면 내가 정착한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대학도시인지라 말이 그다지 통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등 한인커뮤니티가 정착된 대도시가 아닌지라 한국인 가게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버려야만 했다. 독일의 실업률이 꽤나 높다는 점도 한몫한다. 우선 일자리 자체가 적으니 반벙어리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 두세 달이야 갖고 온 돈이 있으니 나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슬금슬금 돈이 바닥나는 게 보이자 급격하게 불안해지고 있다. 엎친 데덮친다고, 떠나기 전 1,400원 후반대였던 유로화는 현재 1,600원에서 내려올줄을 모른다. 그러다 겨우 선배의 권유에 의해 나는 한국 잡지에 독일 생활기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됐다. 잡지사 경력 5년이 영 헛된 것은 아니구나 보람을 느낀 순간. 그러면서 느낀 건데, 한국에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던 직장인이라면 굳이 외국에서 안 통하는 말로 서빙 자리를 알아볼 게 아니라 한국에서 했던 일을 바탕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해보는 게 낫지 않나 싶다. 번역이나 편집 디자인, 녹취기사 등 전문적이고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외국에서도 소일거리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 역시 잡지 연재 원고료로 한 달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는 큰 모자람이 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찌어찌 사이트를 통해 한국 아주머니의 쌍둥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 일도 구했고, 여차하면 숙식도 제공하면서 월급을 주는 일자리가 있는 큰 도시로 옮길까도 생각 중이다. 사업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소한 장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나는 처음에 유럽에서 여성용 스타킹의 질이 별로 좋지 않은 데도 꽤나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는 말에 스타킹을 대량 구입해 팔까도 고민했다. 한국에서는 저렴하고 일반화되어 있지만 독일에서는 비싼 물품들을 고민해 적당한 이익으로 팔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을것 같다. 또한 한국적인 정서를 파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내 친구의 경우 도자기나 귀걸이, 헤어밴드를 만드는 등 손재주가 좋은 편인데, 유럽에서는 이런 자잘한 액세서리는 한국보다 솜씨가 좋지 못한 편이다. 전문적으로 팔려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내 친구의 경우, 벼룩시장 등에서 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자기만의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해 생활 자금에 충당해볼 만하다. 어학의 경우… 글쎄, 독일에서 앞으로 유학하거나 살 요량이 아니라면, 독일어 전공이 아니라면 과연 독일에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독일어에 미친 듯 매진할 만한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떤 외국어든 배워두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영어, 일어, 중국어만큼 인기 있는 외국어가 아니라 특정 분야가 아니라면취업에 도움이 될까도 싶고. 하지만 이왕 1년의 시간을 들여 온 김에 나도 다시어학원에 등록했다. 단 독일어가 1차 목표가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게 목적이므로 매일 다니는 수업이 아닌 1주일에 이틀씩 다니는 저녁 클래스로. 어학원에 대해서는 본인의 워킹홀리데이 목표와 관련해 조절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 정말 독일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당연히 학교 수업처럼 매일 듣는 강의나 과외를 고려할 만하나, 단순히 이 나라에 와 있으니까 배워보자는 막연한 생각이면 돈 버리기 십상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경험들 있지 않나. ‘이번엔 꼭 영어를 마스터하겠어!’라고 눈에 불꽃을 피우며 6개월 학원을 등록하고 고작 한두 달 다니고 스멀스멀 게으름 피우며 나가지 않던 경험들. 외국에서는 절박하니까 열심히 다닐 거라고? 그래서 우리 옛말이 있지 않은가. 안에서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오자마자 어학원을 알아본다, 몇 개월 치를 등록한다, 수선을 떨 필요는 없다. 차근히 현지에 정착하고 어떤 어학원의 어떤 수업이 내 목표와 내 상황과 맞는가를 고려해 선택하자.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기 싶다?
‘독일은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이다’라는 마냥 믿을 수도, 마냥 믿지 않을 수 도 없는 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독일인들은 친절한 편이다. 무뚝뚝하다는 편견과 달리 눈만 마주치면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물론 내가 머무는 하이델베르크가 소도시라 그럴 수도 있지만. 게다가 영어가 잘 통한다는게 큰 이점이다. 따라서 처음엔 나도 외국인 친구 사귀기가 쉬울 줄 알았다. 또,그런 몹쓸 판타지도 있었다. 동양 여자애들이 서양에서 인기라는. 이런 판타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갖고 있는 편인데 특히 주변에서 “넌 외국 나가면 인기 있을 스타일이야”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더 생긴다. 하지만 우선 그런 판타지는 얼른 접어 휴지통으로 버리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것도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데, 한국에서 외국인을 보면 먼저 말을 걸고 친근하게 대해 결국 친구가 되는 일이 흔할까? 그 외국인이 영어권 사람이라 영어 공부에 목숨을 건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자국어로 말이 잘 통하는 독일인들이 사방 천지에 있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사소한 친절을 베풀 수는 있어도 ‘아, 이 동양인과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작심하고 다가오는 외국인은 없다. 그리고 동양의 신비한 여자? 세계 어느나라 남자들이든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슬픈 현실을 말해주고 싶다. 외국에 와서 무조건적인 호의를 기대하지 말자. 친구를 사귄다는 건, 나 역시 그만큼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고, 친밀감을 쌓을 수 있을 만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한다. 무뚝뚝한 말투와 무표정은 금물이란 건 다들 알고 있을 터. 한국이나 외국이나 친구를 사귄다는 건 자기의 노력에 달려 있다. 외국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나면 필연적으로 그런 생각도 든다. ‘아, 한국에 들어 가면 외국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겠다. 그동안은 말이 잘 안 통한다는 이유로 꺼렸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좌충우돌 식으로 외국인 친구를 만들면서 깨달은 귀중한 교훈이다.

좀 더 넓은, 좀 더 깊은 세상을 경험하라
독일은 여행하기 참 좋은 나라다. 위치적으로도 좋고, 독일의 기차 시스템은 잘 이용하면 참 유용하게 짜여 있다. 게다가 유럽을 누비는 저가항공사의 비행기티켓 가격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독일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비용이 서울-제주도 왕복 비용보다 싸다면 말 다한 게 아닐까. 나는 이곳에 와서 나름대로 여러 곳을 여행하고 다녔다. 로마 유적이 즐비한 트리어,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 도시 비스바덴, 처음 참가했으나 그걸로 마지막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축제 러브 퍼레이드가 열렸던 뒤스부르크, 독일의 알프스라는 가르미시 파르텐키르헨, 온 도시에 맥주 향이 나는 듯하던 옥토버페스트의 뮌헨, 한국 교민들과 함께 월드컵 열기를 즐겼던 프랑크푸르트 등. 한여름에 스페인으로 날아가 세계적인 축제인 라 토마티나(토마토 축제)에 참여한 것도 뿌듯하고(비록 압사될 뻔은 했지만), 말로만 듣던 플라멩코를 눈앞에서 무료로 볼수 있었던 세비야도 아름다웠다. 유년시절의 영화로 명명할 수 있는 〈사운드오브 뮤직〉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마리아의 흔적을 되짚어간 것도 소중한 경험. 나들이라도 하는 양 훌쩍 차타고 프랑스 낭시로 건너가 개구리 뒷다리 요리를 먹은 일은 또 어떠한가. 한국에서 내가 ‘그래, 인생 별거 있어? 남들보다 못하게만 안 살면 되는 거야’라는 자포자기 직장인 모드여서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았다면, 모든 정신적 압박을 내려놓은 여기에서의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한국은 아름다운 내 나라요, 내가 평생 살아갈 곳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남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리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키우고 돌아가면 더 이상 남의 시선, 남이 만들어놓은 잣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사람들이면 한 푼 더 벌고자, 한 단어 더 외우는 데 급급하지 말자. 좀 더 넓은 세상, 좀 더 깊은 사람들, 좀 더 다양한 경험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독일 워킹홀리데이 제도에 바라는 점
신청 기간이 따로 없어 아무 때나 신청할 수 있고, 서류만 완벽하다면 누구나 갈 수 있다는 게 독일 워킹홀리데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하지만 역시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정보가 너무너무 없는 편이다. 몇 개월 앞서 떠난
사람들의 블로그가 독일 워킹홀리데이의 교과서라고나 할까. 그리고 아직 떠
난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워홀러끼리의 교류가 쉽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워홀러들이 교류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연결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싶다. 혹은 독일 곳곳의 한인 커뮤니티와 연계해주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자리 문제나 생활 고민 해결 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무쪼록 독일 워킹홀리데이에 와서 큰 불편 없이 즐겁게 생활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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